2010년 1월 11일 월요일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그가 항상 말했듯이 그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정치적 사명 또한 갖고 있었다. 그의 사명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는 통치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통치되는 모든 형태의 정부에도 똑같이 반대하였다. 플라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적어도 완전한 국가, 즉 철학자들에 의해 통치되는 '공화국'에 대한 이상을 마음 속에 그리고 있었다.(p. 94)


소크라테스는 아주 특별한 덕(virtue)개념이 핵심인 이론을 옹호하였다. 덕은 한 개인에게 가장 좋은 것이며, 덕 중에서 첫째가는 것은 철학적이거나 지적인 덕이다. (중략) 철학의 첫번째 덕은 철학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또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을 포기했다고 주장하였다. (p. 98)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기적인 것' (그 자신의 이익,영혼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한 사람의 영혼의 궁극적인 덕을 위한 행동(죽는 것)이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이기적인 것 / 그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은 무엇일까? 한 사람의 영혼의 궁극적인 덕을 위한 행동 /죽는 것 은 무엇일까?


이기적인 것 / 영혼의 궁극적인 덕을 위한 행동 :: 마음과 행동의 차이로 생각하면 될까? 또 이 말은 무슨 말일까? '내 영혼을 정갈하게 간직하기 위해서' 라는 말과 '지금 순간 죽는게 최선'이라는 말, 목적과 수단의 차이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소크라테스 철학의 실질적인 세부사항에 관해 (그는) 별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재차 말하자면,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의 철학에 대한 주장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의 영혼을 구제하는 일이고, 좋은 영혼의 표지는 덕이며,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지식, 즉 지혜를 얻는 일이라고 가르쳤다. 그렇지만 그는 덕은 가르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그는 거의 자신의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하지 않았다. 그는 영혼의 불멸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재생도 믿었다. (중략) 자신의 무지와 더을 계속해서 강조하였음에도 그의 철학을 통틀어서 수정처럼 분명한 명제 하나는 덕은 곧 지식이라는 것이었다. (p. 100)


그래서 (100P)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혜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많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엄격히 깨닫는데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이를 개달으면, 사람들은 '앎'을 얻는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정의'를 구하고 그런 다음 모든 정의를 사실상 거부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에게 '정의'란 단지 (정의, 덕, 용기 같은) 단어들이 어떻게 쓰이는가 하는 사전적 의미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정의, 덕, 용기 같은 것을 그것의 가장 순수한 형태 속에서 추구하였다. 그의 변증법/엄격한 대화법을 통해 모든 부적절한 정의를 제거하고서 남은 것이 진실한 것이라고 하였던 것 같다. (중략)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통상적인 경험 너머에 있는 이데아를 믿었던 것 같다. 이런 이데아가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를 결정한다. 우리의 영혼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이데아를 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이데아는 단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현명한 사람들인 철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데아의 세계에 속한다. (중략) (이러한 방법과 방법의 의의는) 그 이전의 고대 그리스 철학까지, 즉 항상 변화하고 단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세계 너머에 변하지 않는 세계, 다시 말해 이데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과 희망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강조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무지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래서 '그의 말'의 뜻이 아니라, 그의 '행위'의 뜻일테다. 즉 말하는 방법에 대해, 왜 그렇게 말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철학자를 지금의 학문적 철학자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철학자들은 굳건한 의미의 '지식인'과 같은 사람들로 비춰질 뿐이다. 재수없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철학자는 철학이라는 말의 옛 뜻에서 알 수 있듯 그대로 '지혜를 사랑하는' 스스로 알려고, 깨치려고 노력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 노력의 방법은 '지혜'로워지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지금의 '글'과 '논리', '증거'에 갇혀, 갇힌 동네에 정보의 양만 늘리는 자칭 지식인과는 다르다. 삶의 자세의 차이일 뿐이긴 하지만, 이 차이는 꽤 큰 것 같다.


http://club.filltong.net/selfgraphy/21944


2007년 8월 10일 ... 원제 A Short History Of Philosophy (1996). 세상의 모든 철학 .... 세계질서에 대한 탐구-고대 철학 '축(軸)의 시기'와 철학의 기원 / 그리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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